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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_공연

스탠드업 코미디 클럽 '닭대가리 클럽' 을 다녀오다.

- 이 포스팅은 2023년 6월 9일에 작성한 포스팅을 옮겨온 것입니다.-

 

 

 

컴컴한 객석, 스포트라이트가 비친 무대 위로 한 남자가 올라온다. 사내는 마이크를 잡고 실없는 농담을 시작한다. 무게감 없는 농담이지만, 들을수록 광대가 올라가기를 막을 수가 없었다. 비슷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기 시작하고 객석은 이내 웃음으로 가득 찬다. 화자의 개드립만으로 좌중에 웃음을 선사하는 스탠드 업 코미디 현장의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서 코미디라고 하면 때리고 넘어지거나 상황극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개그콘서트식 코미디가 일반적이다. 코미디언의 입담만으로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스탠드 업 코미디는 비주류다. 우리나라에서도 스탠드 업 코미디는 있었다. 일본식 만담을 선보였던 흑백텔레비전 시절이 그랬고 이주일만에 떠버린 고 정주일 씨도 개드립의 일인자였다. 심형래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밤무대에서 선보인 국재 연날리기 대회 드립은 요즘 들어도 충분히 웃기다.

 

영원한 지니이자 키팅 선생님 고 로빈 윌리암스도 알아주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그의 입담은 영화 굿모닝 베트남이나 미셋스 다웃 파이어를 확인하시길 ​

 

 

그랬던 스탠드 업 코미디는 2022년 오늘에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스탠드 업 코미디는 풍자를 기본으로 한다. 대상은 정치는 물론 인종과 지역, 섹스까지 제한이 없다. 특히 정치는 빠질 수 없는데, 높으신 나라님들이 군림하던 시절부터 스탠드 업 코미디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통치자의 선정(?)을 풍자하는 코미디가 불쾌했는지, 알아서 기어주시던 권력자들이 조치를 했는지 모를 일이다. 오죽하면 똑같이 대머리라서 TV에 나오질 못한 배우가 있었던 걸 떠올려 보면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특수한 정치 상황이 스탠드 업 코미디를 비주류로 만드는데 한몫한듯싶다. 내 기억이 맞다면 80년대가 스탠드 업 코미디의 종말을 맞이한 시기일 것이다.

 

한국인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면 고 쟈니 윤을 빼놓을 수 없다.

 

 

정치를 풍자하던 스탠드 업 코미디는 사멸되었고 그나마 약간의 개드립은 자니 윤과 주병진 씨가 본인의 토크쇼 오프닝에서 선보이는 정도였다. (참고로 이 둘의 드립은 여전히 들어줄 만하다) 2022년 한국 방송가에서는 스탠드 업 코미디를 볼 수 없다. 박나래와 유병재를 중심으로 넷플릭스에서 몇 번 시도되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스탠드 업 코미디가 멸종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스탠드 업 코미디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고 코미디언들이 무대에 서고 있다. 특히, 일반인부터 직업 코미디언까지 한 무대에 오르는 클럽이 있어 다녀왔다. 삼각지 역에서 약 200미터만 걸으면 갈 수 있는 '닭대가리 코미디 클럽'이 그곳이다.

이곳을 찾은 건 같은 맥락의 일을 하기 때문이었다. 내 직업 특성상 농담을 빼놓을 수 없다. 좌중이 썰렁할 때 사람들을 한마음으로 웃기기도 해야 하고 강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웃음을 유발해야 할 때도 많다. 강의 내용을 전하지 못하면 최소한 웃고 갈 수 있게 배려해야 하고. 앞 출연자와 뒤 순서를 매끄럽게 연결하기 위해 웃음을 동원해야 한다. 

스탠드 업 코미디언은 오직 마이크 하나만 가지고 웃음을 선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화법이나, 농담 구성, 무대 매너가 궁금했다. 그 궁금함이 나를 삼각지로 이끌었다. 닭대가리 클럽에 가기로 마음먹은 날은 목요일이었다. 마침 오후 강의가 있었고 끝나고 바로 이동하면 공연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닭대가리 클럽은 삼각지 역 3번 출구 근처에 있었다.

 

인디 공연장들이 의례 지하에 있는 것처럼 닭대가리 클럽도 지하에 있었다.

 

 

클럽 지하로 향하는 계단은 스탠드 업 코미디언 사진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보통 오후 7시 30분에 공연이 시작되는데, 마침 1부가 진행되는 중간에 입장했다. 입장 카운터에서 입장료 5천 원(이벤트 가격, 정상가격은15,000원)을 지불하고 자리에 앉았다. 미국 프로그램에서나 보던 무대에서 나와 같은 동양인이 마이크를 잡고 농담을 하고 있었다. 객석은 나 같은 관람객 반, 코미디언 반으로 채워져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객석이 꽉 찰 때는 자리를 두 배 이상 펼친다고 한다.

 

 

 

 

1부 중간에 들어갔기 때문에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려는 차에 1부가 끝났다. 약 7분간의 휴식이 끝나고 2부 무대가 열렸다. 1부가 다소 썰렁했는지 2부 무대에 오른 코미디언들은 독기를 품은 듯했다. 작정하고 개드립을 시전했다. 안타깝게도 웃기지 않았다. 웃는 사람들은 동료 코미디언들이었다. 돌직구 가득한 색드립, 개드립을 시전했지만, 맨 앞에 앉은 여성 관객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코미디언들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사실 얼굴은 난감한 티를 내려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몸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사소한 몸동작이나, 템포는 화자가 긴장했음을 알 수 있는 척도고 내 눈에는 보였다. 내가 듣기로는 무대에 계속 올랐던 프로라고 해도 될만한 사람들인데, 그들도 긴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미지근한 분위기가 이어지며 3부까지 끝이 났다. 

정장을 차려입고 공연장에 들어온 내가 궁금했는지 총 기획자분이 곁으로 다가왔고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냉랭한 분위기가 당황스러운지 운영 6개월을 지나 7개월 차에 이번 같은 공연은 처음이라며 총 기획자가 말했다. 그는 내 옆에 앉아 다음에 꼭 다시 오라고 곧 큰 무대가 있을 거라고도 했다. (사실 말하지 않아도 다음에 또 오려 했다.) 핀 조명이 켜진 무대를 보며, 언젠가 한 번 서보고 싶다는 말을 하니 언제든 오르면 된다고 그가 말했다. 실제로 닭대가리 클럽은 원한다면 누구나 무대에 오를 수 있다. 열린 무대인 셈이다.

 

무대 뒤편에서는 이날 출연한 코미디언 들에게 인기 투표를 할 수 있고 음료와 맥주 그리고 안주를 살 수 있다.

 

 

이날 무대에 오른 코미디언들은 열심히 싸웠지만 안타깝게 환경이 좋지 못했다. 객석의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충분한 사람이 필요하다. 감정은 쉽게 전염되고 사람 수에 비례해 늘어나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람 수가 적을 수록 어렵다. 심지어 리액션을 삼가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면 더하다. 그들은 적어도 남들이 웃어줘야 미동이라도 한다.

스탠드 업 코미디를 재미있게 즐기려면 1차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코미디언의 표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겨야 웃기다. 대체 왜 저런 말을 하는 거지?라며 맥락적인 고찰을 시도하면 웃기지 않다. 다만, 우리가 고 맥락 언어로 소통하고 있기 때문에 저 맥락 언어로 구성된 스탠드 업 코미디를 즐기기 쉽지 않은 것이다. 고 맥락 언어는 화자의 의도가 언어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쉽게 말해 빙빙 돌려 말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이 직설적인 표현을 해도 '대체 왜 저런 말을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고민을 하니 웃기지 않는다. 코미디언의 농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 '함의'를 찾으려 하는데 웃길리가. 

이런 고 맥락 언어는 많은 이들이 스피치를 어려워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자신의 말로 펼쳐질 다양한 변수를 모두 고려하려고 하다 말하기를 포기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이게 '일단 그냥 말하세요'라는 주문이 쉬울리 없다. 아무튼 미국 본토의 스탠드 업 코미디처럼 저 맥락 언어를 바탕으로 하는 농담은 관객에게 잘 전달되기 쉽지 않다. 그들의 스탠드 업 코미디가 아쉬운 이유다.

넷플릭스 영화 돈룩 업을 재미있게 즐기려면 미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미국식으로 기획된 코미디가 우리나라 관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이 점이 그들에게는 숙제가 되겠다. 세상 일이 그렇듯 그들도 이 숙제를 잘 풀리라 믿는다. 지금은 생소한 스탠드 업 코미디지만, 개척자의 앞길이 평탄하지는 않는 법.

 

그들의 험난한 행보에 박수와 응원을 보내며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