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베이어 시스템을 만든 것이 포드였던가?
아무튼 컨베이어 시스템은 잘 알려진 것처럼 대량생산의 혁명이었다. 돌아가는 조립라인에 한 명씩 자기 파트에 서서 같은 일만 종일 반복하면 좋은 결과물이 쏟아져 나온다. 사업가 입장에서 이만큼 대단한 설비가 또 있을까 싶다.
이런 대량 생산은 많은 산업을 몰락하게 만들었다. 손으로 만들던 수공품은 대부분 대량생산 공장에 밀려 자취를 감췄고, 겨우 살아남은 이들은 명품이라 불리며 판매된다. 인간이 손으로 만든 제품보다 대량생산 제품은 값싸고 질도 좋았으니 당연했으리라.
우리나라의 슈트 그러니까 정장을 사 입을 수 있던 양복점의 전성기는 (한참 슈트로 표기할지 정장으로 표기할지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정장이 더 익숙한 단어라고 생각돼서 앞으로 정장이라고 하련다) 60~80년대라고 한다. 당시는 옷을 대량 생산하는 설비가 그다지 많지 않았고, 원단 공장도 흔하지 않다 보니 백화점에서 쉽게 사 입을 수 있는 정장보다는 맞춰 입는 양복점이 더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요즘도 명맥을 유지하는 양복점은 대체로 30년 가까이 된 오래된 곳들이다.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던 아이를 만날 때 그 아이에게 옷 한 벌 맞춰 줄 수 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의 손예진 효과인지 손예진이 정우성에게 옷을 맞춰 주는 것이 그리 예뻐 보여서 나도 만들어 달라고 떼를 썼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해서 실패였다. 그리고 그때 처음 안 것이 우리나라 대학교 패션디자인 학과에서 ‘남성정장’을 만드는 법을 커리큘럼에 넣어 가르치는 곳은 없다는 것이었다. (혹시 가르치는 곳이 있으면 알려달라) 응? 그럼 수많은 맞춤 정장점과 백화점에서 나오는 옷들은 뭐냐고 물어보니, 양복점은 테일러가 전수해 주는 형태로 운영되고(실제 유명 맞춤 정장점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수해 주고 있다.) 8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원단의 품질이 좋아지며 그것을 대량으로 가공해 옷을 만드는 브랜드가 생겨나며 양복점의 테일러들이 후계자를 육성하기보다는 옷 만드는 브랜드로 들어가 양복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남자 하면 정장인데 정작 그것을 정식으로 배울 곳은 양복점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지인 테일러가 말했다. 기성복이 잘 맞으면 기성복을 입으면 된다고. 실제로 기성복은 매우 잘 나온다. 리얼 버튼과 같은 소소한 옵션을 적용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잘만 맞는다면 입은 채로 바로 들고나올 수 있는 기성복이 더 좋을 수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잘 맞는다’를 전제로 한다.
인간의 몸은 비대칭이다. 심장이 정 중앙에 있지 않고 한쪽에 있고 양팔과 다리의 무게는 서로 다르고 길이도 약간씩 다르다. 나처럼 척추 측만증이 심한 사람은 어깨 높이가 이상하기도 하고 등 근육이 이상 발달을 해버리면 등 두께도 다르다. 이런 사람에게는 기성복이 잘 맞을 가능성이 만무하다.
백화점에 가서 기성복 정장을 입어보고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거나. 단추를 채웠는데 라펠 부분이 이상하게 들뜬 다거나 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잘 맞지 않는다는 소리다. 이것을 수선해서 잡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렵다 기성복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것이지 그 사람 몸에 맞게 치수를 재고 패턴을 그려 재단해 만든 옷이 아니다. 실수가 있어도 수정하기 어렵다. 아니 수정할 생각을 못 한다. 허리 넓이나 바짓단 정도 줄이는 것이 보통이다.
맞춤은 다르다. 시간이 걸리는 단점이 있지만 입는 사람의 신체적 결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어깨 높이가 다른 사람에겐 한쪽 어깨에 패드를 더 넣는다든지 팔 길이에 맞출 수 있도록 패턴을 그린 다던지 맞춤은 말 그대로 그 사람에게 딱 맞게 만들기 때문에 정확하게 맞는 옷을 입을 수 있다.
1년에 정장을 얼마나 자주 입든지 간에 정장은 사회적으로 격식을 차린다는 이미지가 있다. 이런 중요한 옷을 잘 맞지 않는 옷을 그냥 적당히 입을 수는 없지 않을까? 스마트폰 하나 살 때는 꼼꼼하게 따져 보는 만큼 자기 몸을 치장하는 옷도 신경 쓸 필요가 있다. 그것이 당신을 대외적으로 규정지을 수도 있는 정장인 경우는 더더욱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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