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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기구 이상의 감성을 담다 – 모나미 브랜드 인격화 인터뷰생활 2025. 6. 16. 10:51
'이 새끼, 살 생각이 없는 놈이구만?"
방이나,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 보면 바퀴벌레처럼 튀어나오는 것들이 있죠. 잊었던 비상금이면 좋겠지만, 비상금보다는 값싼 물건들이 보통입니다. 흰색 육각형 몸에 검은 머리를 올린 모나미 153볼펜도 그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만큼은 필기구의 대명사가 되다 보니, 볼펜 한 자루도 없다는 건 꽤나 비루한 삶을 표현하는 장치가 되기도 합니다. 아마 모나미 153볼펜이 등장한 가장 유명한 영화라면 영화 '공공의 적일' 텐데요, 극중 주인공의 책상 서랍을 뒤져보라는 상사의 지시로 열린 서랍에서 모나미 볼펜 한 자루가 또르르~ 소리와 함께 굴러 내려오죠. 저희 집에도 모나미 153 볼펜이 제법 있습니다. 그래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우리 삶에 흔히 굴러다니는 이 볼펜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1963년, 한 자루의 볼펜으로 시작된 이야기
Q1. 안녕하세요 모나미님 반갑습니다. 벌써 반세기를 훌쩍 넘긴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지금 것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을지를 첫 질문으로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모나미입니다. 제 인생을 한 편의 필름처럼 돌려보면 수많은 장면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중에서도 1963년, 제 이름을 걸고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당시 한국은 필기구 하나조차 귀하던 시절이었죠. 많은 이들이 값비싼 수입 볼펜 앞에서 망설였고, 때로는 작은 메모조차 마음껏 남길 수 없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제 결심이 ‘누구나 손에 쥘 수 있는, 그러나 품질만큼은 최고인 볼펜을 만들자.’ 였어요. 그렇게 세상에 나온 것이 바로 ‘153 볼펜’입니다. 처음 생산라인에서 새하얀 몸체에 검은 뚜껑을 씌운 153 볼펜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모습을 보며, 이 작은 도구가 누군가의 꿈을 기록하고, 사랑을 전하고, 역사를 남길 것이라는 상상을 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오래된 공장 창고를 거닐다 보면, 당시 사용하던 금형과 빛바랜 설계도면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그 앞에 서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그날의 숨결이 다시 느껴지죠. 바로 그 순간이, 제게 있어 영원히 잊지 못할 한 장면입니다.
Q2. ‘153 볼펜’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써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요. 오랜 시간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면, 누구나 부담없이 구입할 수 있는 가격과 그 가격을 뛰어넘는 신뢰성이 아닐까 해요. 값싼 필기구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품질마져 값싸지는 않으니까요. 소비자가격을 웃도는 수명은 많은 이들의 손가락 위애서 부담없이 도구로서의 역할을 다 하는데 충실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긴 시간동안 한 자리를 지켜오지 않았을까요?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사람들의 취향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니까요. 하지만 저는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가치를 지켜왔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누구에게나 가장 편안한 볼펜일 것.’
1960년때 짝퉁 제품에 대한 분노를 담은 모나미의 광고 153 볼펜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담백함 속에 오히려 깊은 정서가 깃들어 있죠.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하지만, 그 깊이는 쉽게 헤아릴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첫 취업 준비를 하며 153으로 자기소개서를 썼고, 또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을지도 모릅니다.
한 번은 이런 사연을 들었습니다. 먼 타국에서 유학하던 한 학생이, 편의점에서 우연히 153 볼펜을 발견하고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고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153은 단순한 필기구가 아니라, 사람들의 추억 속 한 장면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말입니다.
Q3. 최근 소비자들의 취향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트렌드 변화 속에서 모나미만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면 어떤 방법일까요?
트렌드는 마치 바다의 파도와도 같습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결코 같은 모양으로 두 번 밀려오지 않죠. 저는 이런 변화 속에서도 바다의 리듬을 읽으려 노력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단순히 제품을 소비하지 않아요. ‘나만의 감성’, ‘나를 표현하는 방식’을 찾죠. 그래서 저는 클래식한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153 네오’와 같은 제품은 바로 그런 고민의 결과물입니다. 전통적인 디자인에 세련된 컬러와 현대적인 터치감을 더해, 과거의 향수를 간직하면서도 트렌디한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했죠.
1980~90년대 생산된 모나미 칼라볼펜의 복각판, 한정판으로 판매되었다. 한정판 컬렉션도 도전했습니다. 예상보다 뜨거운 반응에 놀라기도 했죠. 사람들은 이제 물건 하나에도 이야기를 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단순히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사람들의 일상과 감정을 함께 담아내는 브랜드로 남고 싶습니다.
요약하자면, '민감하게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고 사람들의 감정에 집중하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Q4. 원론적이지만, 모두에게 필요한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럼 더 깊이 들어가서, 과거의 감성과 현재의 세련됨을 모두 갖춘 제품을 선보이려면 어떤 고민이 필요할까요?
과거는 언제나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앞으로 걸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과거와 현재가 아름답게 어우러질 수 있는 길’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153 아이코닉 시리즈가 바로 그런 고민에서 탄생한 제품입니다. 수십 년 동안 변치 않았던 153의 심플한 실루엣은 그대로 유지하되, 메탈릭 컬러와 고급스러운 재질로 새로운 감각을 입혔죠. 마치 오래된 흑백사진 속 장면에 한 줄기 빛이 비춰지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메탈도금 외관+독일산 잉크를 탑재한 한정판 이런 변화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 본질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찾고, 새로움 속에서도 본질을 기억하게 하는 것. 그것이 모나미가 오랜 세월 사랑받아온 이유이자, 앞으로도 지켜가야 할 철학입니다.
Q5.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필기구 시장도 큰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필기의 가치를 어떻게 지켜나가고 계신가요?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흘러갑니다. 손끝으로 화면을 터치하고,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면 모든 일이 해결되는 시대지요. 하지만 이런 편리함 속에서도, 여전히 마음 한 켠에는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한 줄의 글씨가 주는 따뜻함을 잊지 못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종종 이런 장면을 떠올립니다. 바쁘게 흘러가는 도시의 카페 한 구석, 누군가 조용히 다이어리를 펼치고 오늘 하루를 기록하고 있는 모습 말이죠. 디지털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잉크의 농담과 필압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온도. 그것이 바로 필기의 가치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단순히 글을 쓰는 도구가 아니라, ‘마음을 기록하는 도구’를 만들고자 합니다. 손글씨로 적은 편지 한 장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저는 수없이 목격해왔으니까요. 필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의미로 우리 삶 속에 남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런 의미를 전하기 위해 아날로그의 가치를 계속 전하려고요. 그 감각을 사람들이 느껴보고 즐길 수 있도록 말입니다.
Q6. 모나미의 제품 중 ‘이건 꼭 한번 경험해보면 좋겠다’고 추천하고 싶은 제품이 있으신가요? 이유도 함께 들려주세요.
모나미라는 이름을 들으면 대부분 ‘153 볼펜’을 떠올리시겠지만, 저는 오늘 조금 특별한 경험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모나미 153 리미티드 에디션’입니다.
이 제품은 단순한 필기구를 넘어, 하나의 예술품에 가까운 감성을 담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 심지어 미래의 모나미까지 담아내려 했죠. 세련된 메탈 바디에 은은한 광택, 손에 쥐었을 때 느껴지는 묵직한 존재감까지. 그 순간, 비로소 한 자루의 볼펜이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새기는 ‘동반자’로 느껴지실 겁니다.
한 번은 고객 한 분이 이런 말씀을 주셨어요. “이 펜으로 계약서에 사인하던 순간, 제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된 것 같았다”고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만든 한 자루의 펜이 누군가에겐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요.
Q7. 최근에는 친환경 제품도 선보이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어떤 철학이 담겨 있나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더 깨끗한 세상을 위해 필기구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반드시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리필형 제품의 비율을 늘리고,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적용한 친환경 라인업을 선보이기 시작했죠. 심지어 패키지조차도 최소화하고, 재활용이 용이하도록 설계했습니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친환경 소재는 일반 소재보다 원가도 높고 가공도 까다롭죠. 하지만 이런 노력들이 모여, 미래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브랜드로 남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남기는 것은 오로지 잉크로 기록한 아름다운 순간이어야 하니까요.
이런 저의 행보를 한 마디로 정의 하자면 '남는 것은 기록 뿐이어야 한다'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Q8. 지금까지 국내에서 깊은 인상을 남기셨는데요. 앞으로 글로벌 무대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신가요?
저는 이미 조심스레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동남아의 작은 문구점 진열대에서, 유럽의 한 서점 구석에서, 그리고 미국의 디자인 편집숍에서도요. 그럴 때마다 마음 한 켠에 조용한 자부심이 피어오릅니다. 하지만 아직 저는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섬세한 미감, 정성을 다해 완성한 품질, 그리고 무엇보다 삶을 담아내는 감성을 세계인들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앞으로는 단순한 수출을 넘어, 한국이라는 문화와 정서를 품은 브랜드로서 세계 곳곳에서 사랑받고 싶습니다. 언젠가 파리의 카페에서도, 뉴욕의 서점에서도 누군가 모나미의 펜을 손에 쥐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다면, 그 순간 저는 비로소 ‘세계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Q9. 필기라는 작은 행위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의미로 남기를 바라시나요?
우리가 남기는 것은 때로 한 줄의 문장이지만,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기억을 남기고, 때로는 인생을 바꾸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 몰래 적어 내려간 첫사랑의 이름, 시험지 한 켠에 적어 넣었던 다짐의 문장,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펼쳐본 낡은 일기장. 이런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웃고, 울고, 다시 용기를 얻습니다.
저는 이런 순간에 늘 곁에 있고 싶습니다. 한 자루의 펜이 누군가의 인생에 가장 조용하지만 깊은 흔적으로 남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사람들의 삶을 함께 써내려가는데 한 조각을 차지하는 의미로 남고 싶어요.
Q10.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함께해 준 소비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긴 시간을 함께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 걸어가고 싶습니다.
당신이 기뻤던 순간에도, 슬펐던 순간에도, 늘 조용히 곁에 있었던 그 익숙한 손길처럼. 저 모나미는 당신의 모든 순간에 늘 함께하겠습니다. 때로는 무심하게 책상 한 구석에 놓여 있더라도,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그런 존재로 남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당신의 삶 속에, 당신의 이야기 속에, 그리고 당신의 추억 속에 오래도록 머무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함께해 주세요.
* 이 인터뷰는 브랜드 모나미를 인격화해 진행한 가상의 인터뷰입니다. 사실관계와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감안하시고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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